앳킨스 의장 "투자계약 종료 가능" 명시…토큰 분류 체계 첫 제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대부분의 디지털자산(크립토자산)을 연방 증권법상 증권으로 보지 않는다는 획기적인 해석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SEC가 역사상 처음으로 디지털자산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분류 체계를 제시한 것으로, 업계는 미국 디지털자산 규제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SEC는 17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통해 디지털자산에 대한 연방 증권법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는 해석적 지침을 발표하며, 이번 조치가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디지털자산은 증권 아냐"…전임 정부 입장 180도 전환
폴 앳킨스(Paul Atkins) SEC 의장은 이날 워싱턴DC 블록체인 서밋 기조연설에서 "대부분의 크립토자산은 그 자체로 증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는 게리 겐슬러 전 의장 시절 '대부분의 디지털자산이 증권'이라는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앳킨스 의장은 "이번 지침은 전임 행정부가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사실, 즉 대부분의 크립토자산이 증권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며 "명확한 용어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투자계약 구조가 종료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이는 디지털자산이 초기 발행 단계에서는 증권으로 분류되더라도 이후 네트워크가 충분히 분산화되면 증권성이 소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는 이를 '증권에서 비증권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개 범주 토큰 분류 체계 공개…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증권 아냐
美 SEC와 CFTC는 이번 지침을 통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디지털자산에 대한 공식 분류 체계인 '토큰 분류법(Token Taxonomy)'을 제시했다.
양 기관이 공동으로 제시한 분류 체계는 크립토 토큰을 5개 범주로 구분한다.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ies) ▲디지털 수집품(Digital Collectibles) ▲디지털 도구(Digital Tools) ▲스테이블코인(Stablecoins) ▲토큰화 증권(Tokenized Securities)이다.
이 중 토큰화된 전통 증권만이 증권법 적용 대상이며, 나머지 4개 범주는 증권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디지털 상품 범주에는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리플(XRP) 등 주요 디지털자산이 포함된다.
디지털 도구는 온체인에서 물리적 유틸리티의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자산으로, 일반적으로 증권으로 규제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수집품(NFT 등)도 증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로써 미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주요 디지털자산이 증권법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업계는 이번 지침이 그동안 법적 불확실성으로 위축됐던 미국 내 디지털자산 혁신 활동에 청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어드랍·스테이킹 등 주요 활동 기준도 명확화
美 SEC는 디지털자산 생태계의 핵심 활동들에 대한 증권법 적용 기준도 구체화했다. 에어드랍(무료 토큰 배포), 프로토콜 채굴(마이닝), 스테이킹(지분 예치) 등이 어떤 경우에 증권법 적용을 받는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디지털자산 기업들이 법적 리스크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미국 디지털자산 기업들은 어떤 활동이 증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불명확해 해외로 사업을 이전하거나 혁신 활동을 자제해왔다.
美 SEC·CFTC 협력 체제 구축…의회 법안 논의와 시너지
이번 지침은 SEC와 CFTC가 지난 12일 체결한 역사적인 양해각서(MOU)의 후속 조치다.
두 기관은 해당 MOU를 통해 디지털자산 규제에 대한 협력과 조율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번 공동 지침 발표는 그 첫 번째 성과물이다.
SEC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CFTC와의 관할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 해석 지침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은 CFTC의 관할로 넘어가게 되며, 이에 따라 규제 체계가 재편될 전망이다.
이번 발표는 미국 의회가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 법안을 본격 논의하는 시점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美 상원 농업위원회는 지난 1월 29일 CFTC의 디지털자산 감독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당파적 표결로 통과시켰다.
CFTC의 마이클 셀리그(Michael Selig) 위원장은 "이번 시장 구조 법안이 미국을 디지털자산 규제의 '골드 스탠다드'로 만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SEC의 행정 지침과 의회의 입법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미국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가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집행국장 전격 사임…SEC 내부 변화도 가속
한편 SEC 내부에서는 주요 인사 변화도 이어졌다. SEC는 전일 마가렛 라이언(Margaret Ryan) 집행국장이 전격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라이언 국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집행국장 직책은 통상 수년간 유지되는 자리로, 이례적으로 짧은 재임 기간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라이언 국장의 사임은 즉시 효력을 발생했으며, 샘 월든(Sam Waldon) 수석 부국장이 임시 집행국장으로 임명됐다. 업계는 이번 인사 변화가 SEC의 디지털자산 집행 방향 전환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前 SEC 관계자 존 리드 스타크(John Reed Stark)는 SEC의 집행 방향 전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규제 완화가 투자자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업계 대부분은 이번 지침이 명확성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투자자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하연 기자 yomwork8824@blockstre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