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가상자산 거래소 실명계좌 거부에…200여 거래소 ‘발동동’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1-05-25 14:16 수정 2021-05-25 14:18

“은행과 제휴 녹록치 않아”…대다수 거래소 ‘줄폐업’ 우려
가상자산 간 교환만 제공…원화거래 제외땐 실명계좌 없어도

사진=이수길 기자
사진=이수길 기자
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금융그룹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등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거래소들이 비상에 걸렸다. 4대 거래소를 제외한 중소 거래소들은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0여곳 거래소의 줄폐업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B‧하나‧우리금융지주는 가상자산 사업자 검증 작업에 사실상 참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밖에 농협은행, 기업은행, 케이뱅크 등 여타 은행들도 “계획이 없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사업자는 오는 9월 24일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ISMS)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 개설 등 등록 요건을 갖춰야만 사업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현재 실명계좌 인증을 받은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뱅크) ▲빗썸(농협은행) ▲코인원(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뿐이다. 은행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나머지 거래소들은 9월 24일 이후 폐업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은행권이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실명계좌 제휴를 꺼리는 이유는 이익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자금세탁 등 범죄와 연루될 위험이 있으며, 은행이 사실상 투자자들의 신뢰를 담보하는 모양새기 때문에 향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

주요 은행과 제휴을 맺지 못한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지방은행과의 제휴 추진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고팍스의 경우 부산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논의한 바 있다. 한빗코, 지닥 등도 국내 은행과 논의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거래소 관계자는 “지방은행을 포함해 현재 시중은행 세 곳 정도와 소통 채널을 열어놓고 이야기 하고 있다”며 “최근 은행권 분위기가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보완 사항 등을 최대한 은행의 요구에 맞춰 빠른 시일내에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원화 거래를 제외한 거래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실명계좌 인증은 원화거래를 지원하는 거래소에게만 부과되는 의무다. 때문에 일부 거래소는 애당초 가상자산 거래만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빗코다.

한빗코 관계자는 “이전부터 가상자산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깨끗한 가상자산 거래’를 키워드로 내걸고 비트코인 마켓만 오픈해왔다”며 “실제로 특금법에서 가상자산과 현금 간 교환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거래소는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의무화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거래소를 제외하고 국내 200여개 거래소들의 줄폐업은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한 중소 거래소의 줄폐업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라면서도 “최근 은행권의 보수적인 접근으로 인해 실명계좌 인증이 어려워 지면서, 차근차근 준비해오던 견실한 거래소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수민 기자 k8silver@
주동일 기자 j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