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된 ‘익명’ 텔레그램…탈퇴운동·토큰 금지·개발 배제 ‘삼중고’

블록스트리트 등록 2020-03-30 08:11 수정 2020-03-30 08:12

미국서 블록체인 플랫폼 출시·토큰 발행 금지
투자자들, 하드포크 등 텔레그램 배제 방안 검토
온라인서 ‘n번방’, ‘박사방’ 참여자 수사 협조 촉구

‘악명’된 ‘익명’ 텔레그램…탈퇴운동·토큰 금지·개발 배제 ‘삼중고’
텔레그램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악재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n번방’ 사건 수사 협조를 촉구하는 탈퇴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미국에선 대규모 투자를 받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진행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텔레그램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자들은 텔레그램을 배제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 니콜라이 두로프와 파벨 두로프 형제가 2013년 설립한 메신저 업체로, 지난 2018년 공식 발표한 이용자는 2억명에 달한다. 익명성과 보안성이 높아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지만 범죄 등에 악용될 가능성도 함께 안고 있다. 최근 성착취 영상 제작·유포 범죄가 이뤄진 ‘박사방’, ‘n번방’ 사건 역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일어났다.

◇ 첼시 구단주·스티브잡스 아내도 참여한 텔레그램 블록체인 프로젝트 = 텔레그램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톤(TON) 출시와 가상화폐(암호화폐·가상자산) 토큰인 그램(Gram)을 발행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3월 24일 미국 뉴욕 남부 지방법원으로부터 받았다. 텔레그램은 2018년 가상화폐 공개(ICO)를 통해 17억달러를 유치한 바 있다. 법원에서 이를 미등록 증권 판매로 인정해 톤 출시와 그램 발행을 막은 것이다.

문제는 그램에 대한 투자 규모다. 그램은 2019년 4월 테스트버전 공개 당시 시가총액 5~6위에 달하는 대규모 가상화폐로 성장할 것이라 평가받았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처럼 탈중앙 앱 호스팅이 가능하고, 디앱 등 이더리움 개발 서비스 호환까지 가능하다는 기술력까지 인정받으면서 그램에 대한 업계와 투자자들의 이목은 날로 커졌다.

실제로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엔 영국 프로축구팀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러시아 메드베데프 행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은 미하일 아비조프, 독일 결제서비스 ‘와이어카드’ 최고운영 책임자 잔 마르살렉 심지어 애플 공동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 잡스 등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인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로렌 파월 잡스의 경우 약 5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인데스크 등 외신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에서 톤 커뮤니티 재단은 하드포크 등을 통해 텔레그램을 제외하고 톤을 출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톤 커뮤니티 재단은 톤 개발자와 투자자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이에 일각에선 텔레그램이 투자금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텔레그램은 미국 뉴욕 남부 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토큰 ‘그램’의 익명성을 우려해 미국 뉴욕 남부 지방법원이 토큰 발행 금지 판결을 내렸다고 분석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램이 송금인·수신인의 신상을 알 수 없는 다크코인이라는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 ‘악명’ 된 ‘익명성’...수사 협조 요청하는 ‘탈퇴 운동’ = 업계 관계자는 “모네로 등 유명 다크코인이 여러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거래 중단 처분을 받는 상황에서 그램이 굳이 다크코인을 출시할 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그램의 출시 금지 처분이 익명성 등 범죄 악용 가능성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의 기반이 된 텔레그램이 익명성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의 수사 협조 요청에 불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n번방’과 ‘박사방’의 운영자뿐만 아니라 참여자까지 조사하고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참여자들 중엔 각 방의 운영자들에게 가상화폐를 보낸 뒤 액수에 상응하는 ‘방’에 들어가 성착취영상을 관람한 이들도 있다.

참여자들을 조사하기 위해선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텔레그램은 신고된 성착취 영상만 삭제해주고 있다. 참여자들의 개인정보는 제공 요청엔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익명성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텔레그램의 정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은 익명성과 함께 보안성도 높기로 유명한 메신저인 만큼, 텔레그램의 협조가 없는 경찰의 참여자 수사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네티즌들은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탈퇴운동’을 진행 중이다. 실제로 25일엔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오후 9시에 단체로 텔레그램을 탈퇴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른바 ‘N번방 텔레그램 탈퇴총공’이라 불리는 이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탈퇴 사유에 “Nth room - we need your cooperation!”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우리나라 말로 “n번방 사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라는 뜻이다. ‘N번방 텔레그램 탈퇴총공’은 29일 오후 9시에도 진행될 예정이다.

텔레그램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여론은 ‘탈퇴운동’에 이어 ‘n번방 알리기’와 ‘텔레그램 불매’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텔레그램의 n번방 수사 협조를 촉구하는 네티즌들은 n번방 사건 현황을 알리는 게시물을 영어·중국어 등으로 만들어 SNS에 게시 중이다. 해당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nthroom_sexual_exploitation(n번방 성착취)’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boycott telegram(텔레그램 불매)’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주동일 기자 jdi@